마술/마술 관련 생각들

20240114 '패터'에 관한 단상

리뷰장인김리뷰 2024. 1. 14.

 

올해 2024년이 밝고, 1월이 된지도 벌써 2주가 되어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1월은 언제나 새롭고 희망찬 시기이죠.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가 있는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한가지 의미가 더 있는데 바로 아르카나의 기념품이 포함된 1월호가 배송된다는 것입니다 ㅎㅎ

 

이번 아르카나 칼럼 중 인상깊게 본 코너가 있었습니다. 바로 맥시멈 엔터테인먼트에 수록된 켄 웨버의 'The Hierarchy of Mystery Entertainment'를 발췌하여 번역한 코너였습니다. 여기서는 다양한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제가 특히나 인상깊게 본 부분은 '패터'에 관한 짧은 이야기였습니다. 훌륭한 트릭과 연출임에도, 적절하지 못한 패터는 마술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내용이었죠.(자세한 것은 아르카나 2024년 1월호를 보시길 바랍니다)

 

이 코너를 보다보니 문득 예전에 들은 한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해법 or 기술 = 마술'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다양한 기술의 연마에만 집중했었습니다. 어쩌다 참석하게 된 마술모임에서도,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기술과 해법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죠. 그때 마술시연들을 쭉 보던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기술은 좋은데, 지금 기술시연만 할 뿐 마술은 전혀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네요.

지금 하시는 행동들을 녹화해보시거나, 아니면 녹음이라도 해보시고 추후에 다시 들어보세요.

당신이 지금 하는 패터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수 있을 겁니다."

 

저는 사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고, 어이없었습니다. 나름 사람상대하는 직업이기에, 말 하나는 잘한다 자부해왔고, 패터도 물 흐르듯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오기 겸, 반항겸 정말로 제가 마술을 할때 제가 직접 녹음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경악했습니다.

 

'세상에, 이게 정말 나라니. 내가 이렇게나 어처구니 없는 내용과 흐름으로 말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은 마술 시연에 있어서 사실 '마술 과정을 다 외워서 줄줄 앵무새하듯 하는 모습은 너무 경직되어 있다'라는 핑계하에 적당히 rough한 흐름만 잡고 애드립으로 하는 제 기존의 모습을 송투리째 부순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마술을 하게 될 상황을 미리 알고 있다면, 꼭 한번은 직접 스크립트를 작성해봅니다. 머리속으로 쭉 실제 상황을 생각하고 거울을 보면서 해보는 것도 좋지만, 어딘가에 'Write down'하는 것은 그와 차원이 다르게 각인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녹음하고 추후에 들어보는, 약간은 귀찮은 작업을 몇번 해보시면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패터를 구상할 때 한 가지 더 고려해보시면 할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문학이론에서 일부 가져온 내용인데, 바로 '체호프의 총' 이론입니다. 간단하게 기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총을 소개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총을 쏴야 하며, 만약 쏘지 않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버려야 한다.

 

즉 쓰지 않을 장치나 이야기라면 언급하면 안되고, 최대한 무의미한 부분을 덜어내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술 연출을 위해서 '어릴 적 봤던 연예인'라는 개념을 패터에 넣었다면, 그것이 단순 흥미 유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당 내용이 꼭 마술 내에 녹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관객이 자유롭게 고른 4장이 4장의 퀸이었고, 그들은 4인조 걸그룹 에스파였습니다! 라던가요. 이 패터는 물론 아주 구립니다..)

실제로 여러 마술공연, 심지어 프로마술사로 알려진 분들의 공연도 보다보면 초반 관객을 마술로 '초대하는 패터'는 기가 막히지만, 해당 내용이 결국 그 후로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서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엥, 근데 처음에 했던 내용과 마술이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이 든 적도 꽤나 있습니다. 분명 기가 막힌 연출이었음에도, 뒷맛이 씁씁하게 남는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어디서 프로 공연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런것을 신경 쓰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반대로 '손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할수록' 이러한 패터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그저 '이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으로 넘긴다면 발전이 더디거나 벽을 만나는 것은 마술 뿐만 아닌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이야기 라고 생각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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